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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와 제언] 회고와 제언

  • 유병찬 목사(3대 목사)
  • 조회 : 45
  • 2023.04.24 오후 10:06

                                                      회고와 제언

 

                                                                                                                                                                  유 병 찬 목사 (3대 목사 - 양평교회 원로목사)

 

잠시동안 주님의 지체인 안암교회를 섬기는 사람으로 인연을 맺었던 것 뿐 무엇을 회고하고 남길 말이 있겠는가 생각하면 별로 할 말이 없지만한마디 말이라도 후진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하는 마음으로 다음과 같은 일들을 정리하는 바입니다.


Ⅰ 회고


1. 사실 나는 그 당양평 시골에 있으면서 경기노회장을 2번이나 역임하고 또 총회 서기로 봉사하던 때였고, 일본 유학에서 돌아와 조금은 피곤한 상태였는쉴 사이도 없       이 안암교회를 소개받아 교회의 여러분들이 합당하게만 여기 신다면 부임하겠다고 제의했더니 저를 만나 보신 장로님들께서 말씀하시기를 교회 절차상 여러 성도님들께 얼     굴을 보여드리는 것이 도리일 것이라 하셔서 197311월 첫주일 낮 예배시에 별지 설교원고의 내용으로 설교를 하였습니 다. 본래 말재주도 없고 화술이 능치못할 뿐 아니     라 흔히 말하는 18번의 설교 가 없는 사람이라 그저 바울선생과 같은 심정으로 섬기며 살자는 뜻을 표현 했더니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설교가 시원치 않아서 기절당할뻔     했다는군요. 그러나 청빙을 해주셔서 19731128일 안암교회에 취임을 했고 1979 5월 청주제일로 옮겨 갈 때까지 56개월 동안 안암교회 교우 여러분들과 더불어     희로애락을 같이하며 주님께서 저에게 맡겨주신 임무를 수행하고자 노 력했습니다. 저의 전임 목사이신 김경수 목사님은 안암교회를 섬기시는 동안 교회사택이 없어서 여

   러번 이사를 다니셔야하는 고초를 겪으셨기 때문에 이번 부터 사택을 마련하자는 의론이 결정되어 우선 공목사님을 다른곳으로 이사가 시게하여 드린 후 외벽도 미처 바르

   지 못한채 교육관 2층의 벽돌만 앙상하게 보이던 집을 목사관으로 만들어 이사짐을 풀었습니다.

   너무 급하게 수리했던 탓인지 어느 날인가 연탄까스로 마시고 쓰러져 새벽기 도회를 인도못한 일도 생각이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슴이 아팠던 일은 창립된지 26년이

   나 되었다는 교회 건물이 흙벽돌 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물 론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하고 신앙고백을 한 지체들이 모인 그 자체가 교 회인 까닭에 예배하는 장소가 길

   거리든 광야든 상가건물이든 상관없지만 그래 도 서울 도심지에 있는 성전인데 하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그렇다고 뾰족한 묘안도 없었던 것은 취임한지 얼마 안된 나로서는 

   성도님들의 가정형편도 파 악하지 못한 상태였고 설상가상으로 19744월 부활절까지 교회재정은 순전 히 적자였습니다. 조금 세월이 흐른 후 교회당 건축을 교회에서 논

   의하고 제직회에 제안하기로 했으나 일시나마 벽에 부딪쳤고, 처음에는 권사회를 조직 하는 일에 거세게 거부반응을 보이셨던 권사님들의 요청으로 건축위원회가 출 범했으

   나 끝내 유종의 미를 걷우지 못했는데 최해섭 장로님과 거래관계가 있 으셨던 진우구 장로님이 (현재 인천에 거주함) 건축헌금을 시작한 것이 효시 가 되어 온 교회가 책정

   한  5,000만원의 건축헌금을 교인 각자가 분담하여 대 개는 3년 적금으로 꾸준히 불입하심으로 약속을 지켜 나가셨다. 또한 안영수 집사가 작곡한 성전건축의 노래를 매월 

   첫째주일 힘차게 부르면서 건축헌금을 하던 일은 신선한 충격으로 아직도 내마음에 살아있습니다.

 

2. 제가 안암교회 취임하기 이전부터 계시던 교회 관리인이 사적인 사정으로 교 회를 떠나게 되어 양평교회에서 함께 일하시던 김영순 권사님을 관리인으로 오게한 후 성가대

   에 급식을 시작하기로 했는데 취사도구도 변변치않은데다 땔 감도 마땅치가 않아 교회에서 나오는 휴지조각들과 나무조각을 모아 밥을지 었는데 바람이나 비가오는 날에는 

   연기 때문에 매워서 눈물께나 흘리던 일이 은혜로웠던 기억으로 눈에 선합니다.

 

3. 양평시골에서는 대예배때나 저녁예배시 흰고무신을 신고나와 교인들과 인사 를 했어도 결례가 되지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정영자권사 께서 목사님 여 

   기는 서울입니다고무신 신지 마셔요 하는 말씀을 하시던 일 이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아 미안했다는 말씀을 늦게나마 새삼드리고 싶 군요. 또 한가지는 중진 집사님들

   의 이름을 가나다 순으로 주보에 게재한 일 이 있었는데 나의 착각으로 고석범 집사의 이름을 앞에 놓아야 할 것을 뒤에 두고 김창근 집사(현재 장로이심)를 앞에 놓아둔 것

   입니다. 무슨일로 고석범 집사와 대담 중에 목사님이 김창근 집사를 더 알기 때문에 앞에다 이름을 써 놓지 않았느냐? 던 그말이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여 미국 어디에 사시는

   지 모르지만 이제라도 꼭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4. 또 한가지 내가 그당시 건축헌금을 30만원 작성하고 청주로 이사를 가게 되 어 그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고(10만원만 내고 20만원은 못내고 있다가) 1994 년도에 가서 20

  원을 정산했으나 다시 그 금액을 설교할 사례로 주신 것을 받아서 마음이 개운치 않습니다.

 

5. 특히 잊을 수 없는 고마움은 안암교회에 오기전, 일본유학때 쇠약해진데다가 경기노회장으로, 총회서기일로 피곤하던차 서울에 처음 올라와 긴장상태가 계 속되어 결국 만

   성 간암으로 쓰러져 우석병원에서 한달여간 입원하고 치료한 일을 염려해 주시고 그후에도 완치되도록 도와주신 당회와 교우들의 사랑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6. 또 한가지 일은 975월 청주로 떠날 때 후배와 약속을 지킨다고해서 후임을 선택하는 권한을 교우들에게 드리지 못했다는 점을 지금도 죄스럽게 생각하며, 청주로 떠날 때 권사님들이 선물로 주신 손목시계(그당시 최신형 일제 SEIKO)를 볼때마다 권사님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제언

 

1. 나도 대교회주의를 찬성하지 않는 사람중에 한사람이지만 200-300명 정도는 모여야 교회의 기본적인 일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데 교회는 교우들이 교제하는 곳이라고 

   할적에 창립멤버라든지 마음이 맞고 친분이 두터운 사람끼리만 뭉치지 말고 누가 어디에서 왔든지 상관없이 초대교회 안디옥 교외와같이 또는 바나바가 자기보다 나중된 바

   울을 높이고 앞장세워 교회를 발전시키고 선교한 것처럼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을 폭넓게 끌어안는 넓은 마음으로 처음 찾아오는 이들을 정착시킬 때 인원도 늘고 부흥하게 되

   리라 믿습니다.

 

2. 교회는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 지체가 모여 한몸을 이루었기 때문에 차별되어져서는 안될 것입니다. 어느해인지 모르지만 우이동 어느 골짜기로 야외예배로 나갔을 

   때였다고 기억이 납니다. 일반교우들은 나름대로 점심을 준비해 왔겠지만 교회중진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교우들을 살피고 함께 점심이라도 나누었으면 좋았을 것을 끼

   리끼리 모여 공동체 하고는 전혀 관계없는양 행동하는 것 등은 교회발전에 유익이 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끝으로 바라는 것은 50년 반세기를 넘기고 21세기를 맞는 안암교회는 빌3:12-14절에 기록된 바울사도의 심정으로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교회로 발전하고 하나님의 선교

   에 책임을 다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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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고와 제언] 회고와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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