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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 및 제언] 살아있는 교회 안암교회 설립 50주년을 축하 하면서

  • 김경수(2대목사)
  • 조회 : 43
  • 2023.04.24 오후 09:22


       살아있는 교회 안암교회 설립 50주년을 축하 하면서

                 

                                                                                                                                       김경수 목사 (2대목사)


하늘에는 별이, 땅에는 하나님의 등대 인간의 양심인 교회가 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밖에 없는 아들 이삭을 번 제물로 바쳤을 때 내가 반드시 너에게 큰 복을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너의 자손이 크게 불어나서 하늘의 별처럼 많아진다는 것이었다.

한국교회가 받은 큰 복이 바로 아브라함이 받은 큰 복과 같은 것이었다. 밤마다 서울의 하늘을 수놓는 붉은빛의 십자가들을 보라. 캄캄한 밤이면 그것이 마치 하늘의 별처럼 반짝이지 않는가. 그렇다고 그것만으로 만족한다면 한국교회는 맛잃은 소금, 발밑에 밟히는 모래알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잊지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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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안암교회에 부임한 것은 미국유학에서 돌아온 일년후였다. 나와 고향이 같은 유운필 목사의 소개로 안암교회 설립자인 공형락 목사를 만나게 되었고, 안암교회가 나를 당회장으로 불러준, 하나님의 은혜로 시무를 하게되었다. 안암교회는 처음 고려대학교 이공대앞 안암네거리 한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좋은 자리였다. 교회는 크지 않았지만 아담하고 마음에 드는 교회였다. 목사님을 비롯하여 온 교우들이 하나가 되어 교회성장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며 애쓰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목회방향은 첫째가 교회성장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무턱대고 성장만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아니였다. 왜냐하면 교회성장에도 바람직한 것이 있고, 그렇지 못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고대사는 종교적으로 무당종교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교회는 그리스도교(복음)와 종교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그리스도교와 무당종교를 구별하지 못할 때 어떤 결과가 되는지는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이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야웨종교를 받아들일때부터 먼저 우상파괴로 하나님의 뜻을 세웠다. 눈에 보이는 우상은 두말할 것도 없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우상도 이스라엘 민족은 용납하지 않았다. 그것이 야웨종교의 본질이며 사명이었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와같은 신앙이 없었다면 그리스도교의 발전도 없었을지 모를 일이다. 하나님께서 모세로 하여금 십계명의 첫 계명과 둘째 계명에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고 쓰게 한 것도, 야웨종교와 무당종교를 구별하기 위해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아직도 무당종교를 비롯한 불교적인, 유교적인 요소가 많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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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는 보수와 진보자는 구별도 없다. 성서 어디에서 진보주의니 보수주의니 하는 낱말들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이 모두가 인간들의 머리에서 나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없애려고 온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없애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고 말씀하셨다. 지금은, 그리고 앞날은 성서의 완성시대라고 해야할 것이다. 보수와 진보를 초월하여 복음의 속뜻을 밝혀내어 21세기 그리스도 혁명을 완성해야 할 때가 지금임을 깨달아야 한다. 한국에는 하늘의 별처럼 교회가 많다. 그렇다고 그 모두가 그리스도께서 찾으시고 앉아계시고 움직이시는 교회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예수께서 열매를 보아 그 나무를 안다고 하셨다. 나의 목회방향은 성서의 이런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설교가 항상 젊어있어야 했다. 아브라함이 백세가 되어도 늙지않았던 것처럼 설교의 뿌리는 성서가 되어야 하고 그 표현은 언제나 싱싱해야 했다. 내가 독서를 좋아하고 시를 쓰게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안암교회는 그런 뜻에서 나에게는 가장 좋은 교회였다. 왜냐하면 안암교회 성도들은 나의 어떤 설교도 좋게 받아주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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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암교회는 새벽을 깨우는 교회, 하나님의 말씀으로 움직이는 살아있는 교회였다. 나는 나의 정렬을 받쳐 구약성서의 예언서와 함께 칼 바르트를 이야기하고 폴 틸리히를 소개하며 불트만과 본 회퍼를 앞세웠다. 사도바울이 천막을 만들어 팔면서 예수의 복음을 전하였듯이 나는 대학에 나가서 강의를 하면서 시와 기독교방송국의 명상의 시간원고를 쓰면서, 또 한편으로 번역과 함께 수상집과 에세이집을 정리하여 간행하면서 정말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쁜 목회생활에 몰두하였다. 그러면서도 봄철 대심방과 가을 대심방은 틀림없이 하였다. 이 모두가 교우들의 협력없이는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만일 안암교회가 나의 목회방향과 설교에 공감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8년 이상의 목회생활을 안암교회에서 할 수 있었겠는가. 한 나라의 종교는 그 나라의 문화수준을 넘을 수 없다고 한다. 교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메시지가 그 나라의 문화와 전통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어떻게 역사의 앞자리에 서서 손짓할 수 있겠는가. 나는 유명한 신학자들의 신학도 많이 소개했지만 니체와 하이데거도 이야기했고, 서양의 고전음악과 반고호를 비롯한 세계적인 그림도 많이 소개하였다. 한국의 역사와 고전들, 그리고 한국의 시와 영미, 독일, 프랑스, 러시아의 문학작품들도 내가 아는 것 모두를 쏟아놓았다. 이 모두를 받아준 안암교회. 멋있는 교회 아닌가. 살아있는 교회 아닌가. 안암교회는 이미 21세기를 준비한 그 바탕이 되어 있는 교회였다고 나는 믿고 있다. 교회와 역사, 신학과 문화를 이야기할 수 있는 교회라면 깨어있는 교회,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교회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역사가 토인비는 하등종교와 고등종교를 구별하면서, 미래의 과학에 견딜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아직도 가짜 종교가 판을 치는 사회에서그리스도마저 미신의 메신저가 되서야 되겠는가. 내가 전하는 메시지는 첫째 무당종교에서 떠나는 것이었다. 토정비결이나 사주팔자니 운명이니 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와지는 것이었다. 만일 우리가 무당종교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축복이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진실, 그리스도의 참뜻을 깨닫는 것이었다. 지구 위에는 종교 때문에 망한 나라도 흔히 있지 않은가. 또 고려가 망한 것은 고려의 불교가 가장 흥했던 때였고, 조선왕조가 망한 것도 유교의 전성시대였다는 것은 많은 것을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덮어놓고 교회가 크다고 좋아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로마 카톨릭이 왜 망했는가. 안암교회는 그런 뜻에서 건강한 교회였다. 병든 신앙의 병든 교회로서는 새 예루살렘(새역사-새하늘과 새땅)을 세울 수 없다. 내가 전한 두 번째 메시지는 그리스도인은 항상 젊어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젊은 사람은 젊기 때문에 젊어있어야 하고 늙은이는 늙었어도 늙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신도들이 성령이 충만했을 때 들려온 요엘의 예언이 아닌가. 그래서인지 안암교회에 모였던 신도들 중에는 대학생도 많았지만 모두가 젊어있었다는 것이, 지금도 내 머리에 떠오르고 있다. 장로님들도 젊었지만 권사님들과 집사님들도 모두 젊어있었다. 나의 목회생활에서 잊혀지지 않는 한가지 사실은 내가 목회한 40년 목회생활(종군목사시절 포함하여)에서 장례식보다 결혼주례가 훨씬 많았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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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암교회에는 잔잔하게 늘 웃기를 좋아하는 남녀 집사님들이 여러분 계셨다. 그중에서 지금도 잊히지 않는 두 집사님이 있다. 그중 한 집사님은 장애인의 딸을 싹바느질로 키워 시집을 보냈지만, 양계로 꾸려가는 생활이 넉넉지 못하여 낳은 아기까지 친정으로 데리고와서 살아가는 가난한 생활속에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았던 홀로인 여집사님이다. 또 한분은 그 집사도 홀로 아들 하나를 싹바느질로 키우는 어려운 생활이었지만 변치않는 믿음으로 언제나 한결같이 웃으시는 그 넉넉한 마음씨, 그 아들이 커서 어느 전자회사에 취직했다는 흐뭇한 소식을 듣고 기뻐했던 일도 회상하면 즐거워지고 있다. 그외에도 생각나는 성도들이 많이 있지만, 그것을 다 여기 기록할 수도 없고, 또 만일 내가 실수하여 꼭 이야기해야 할 이야기를 미쳐 적지못한다면, 그 섭섭함이 클 것 아니겠는가.

안암교회는 지금도 건전하게 성장해가고 있다. 내가 목회하던 때의 여러 장로님들과 권사님들, 그리고 여러 교우들과 성도들이 이 세상을 떠났거나 딴 교회로 옮겨갔다고 해도, 안암동에서 보문동으로 옮긴 안암교회는 여전히 아담하고 좋은 교회로 성장하고 있다.

아차, 잊을뻔 했던 일 한가지를 더 여기 적어놓아야겠다. 내가 안암교회에 있을때 서울 사범대학 부속 중고등학교 선생으로 재직했던 분이 계셨다. 그의 아내는 집사님이었지만 그는 평신도였다. 그때가 대심방때였다고 생각된다. 예배가 끝난 다음 여집사님께서 남편의 책상 서랍을 열더니 큰 노트 한권을 꺼내 보여주는 것이었다. 펴보았더니 그 노트에는 내가 주일 낮 예배시간에 전했던 설교 하나하나가 빠짐없이 깨끗하고 정확한 필치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때의 그 놀라움과 기쁨, 잊을 수 없다. 그 집사님 가정은 지금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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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밤하늘의 별처럼 많아야겠지만 모래처럼 많아서는 아니될 것이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밖에 버려져 가고 오가는 사람들에게 짓밟히듯 교회가 그렇게 되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나는 안암교회를 떠난 다음 창현교회에서 약 11년동안, 그리고 제주도 남부교회에서 약 8년동안 목회를 하다가 자진 은퇴하고 상경하여서는 기장 호산나교회에서 또 약 5년동안 설교목사로 있다가 이제는 시와 기도와 음악과 여행으로 인생의 마지막을 불태우고 있다. 나의 삶이 언제 끝날지 그것은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이고 나는 모른다. 그러나 나의 한가지 바람은 한국의 모든 교회가 밤하늘의 별처럼 어두운 역사 속의 빛이 되어 환하게 반짝이는 것이다. 나는 미가와 예레미야를 좋아한다. 그리고 이사야의 예언이 우리나라에서 실현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그 이상으로 그리스도의 나라가 역사의 새하늘과 새땅을 열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칼 바르트는 종교와 그리스도교를 구별하라고 했다. 예수께서 가장 싫어한 것은 틀에박힌 종교인이었다. 바로 바리새인이 그들이었던 것이다.

큰교회는 큰교회대로 맡겨진 사명이 있을 것이다.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대로 해야할 일이 많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교회는 교회 이상도 교회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중세기교회는 교회의 빛을 잃었기에 망했다. 지금 세계는 모두가 세속화하고 있다. 의 구별이 없어지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성서보다 신문을 믿고 있다. 그리고 무서워하고 있다. 현대인의 교회는 텔레비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그리고 과학이 종교를 밀어내고 있다. 복음이 설 자리가 자꾸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때의 가장 큰 악령의 유혹이 돌로 떡을 만들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기적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것을 딱 거절하셨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보여준 구원의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을 깨달은 사람이 21세기 구원의 열쇠를 받은 사람이 아닐까. 지금은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전해야 할지를 함께 고민해야 할 겟세마네의 때이다.

안암교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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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고 및 제언] 살아있는 교회 안암교회 설립 50주년을 축하 하면서
  • 2023-04-24
  • 김경수(2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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