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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를 다녀와서 (2) ....정유현 청년


여수를 다녀와서 (2)

정유현 청년

 

손양원 목사의 이야기를 접했을 때 어떻게 고난을 이겨냈는지, 어떻게 죽음을 각오하고 사랑했는지 궁금했다. 그분이 밟았던 땅을 밟고, 마셨던 공기를 마시고, 보았던 풍경을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아 손양원 목사 순교기념관을 가기로 결심했다. 35번 버스 종점에 내려 양계장과 양돈장을 지나자 사진 속에서 보던 애양원 교회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픈 역사를 간직한 건물을 한 바퀴 돌고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 기도를 드렸다. 이 땅이 품고 있던 아픔과 감동이 느껴졌다. 교회 옆에는 한센기념관이 있다. 이곳은 예전에 한센환자들을 돌보던 병원 건물이었지만 지금은 일제시대부터 현재까지의 한센환자들이 겪었던 애환을 볼 수 있는 자료를 보관하는 곳이 되었다. 손양원 목사와 애양원 교회 성도들의 생활상도 볼 수 있었다.

 

언덕을 내려와 다리를 건너 기념관으로 향했다. 다리 양옆의 갈대밭을 보며 아픔과 미움이 가득한 이 세상과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넓은 공원을 지나 기념관이 보였다. 기념관 안에는 손양원 목사가 주고받았던 편지와 직접 쓴 물건 그리고 사진들을 볼 수 있었다. 거기에는 손양원 목사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손양원 목사와 동료들이 웃고 있는 사진 밑에 이런 설명이 있었다. 해방 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할 때 절을 했다고 한다. 이것은 신사참배의 연속이라고 손양원 목사와 동료들이 반대하여 가슴에 손을 얹는 방식으로 바꿨다고 한다. 손양원 목사의 철저한 믿음의 원칙을 알 수 있었다. 손양원 목사가 입던 옷은 매우 작아 보였다. 왜소한 몸집에서 큰 소리와 기품, 그리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사랑이 나왔다는 것에서 외양을 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발견했다.

 

기념관에서 느낀 정취를 좀 더 느끼고 싶어 기념관 옆에 있는 오늘이라는 카페에 갔다. ‘오늘이라는 이름은 손양원 목사의 오늘만이 내 날이다라는 설교에서 따온 것이라고 했다. 카페에서 봉사하시던 분과 손양원 목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안타까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다음 주부터 무기한 휴관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기념관 운영을 놓고 애양원교회와 유족간의 갈등이라고 했다. 이렇게 중요한 기념관은 교단 총회에서 운영하는 줄 알았는데 애양원교회가 교회재정과 개인후원금으로 운영한다고 했다. 기념관은 결국 시골 교회가 혼자 운영하는 상태인 것이었다. 손양원 목사가 순교한 후에 손양원 목사의 가정은 사정이 많이 안 좋아졌다. 형제들이 화목하지 못하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겪었다고 했다. 다행히 주님께서 지금까지 이끌어주셨지만 손양원 목사의 부재로 입은 상처를 치료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보였다. 유족 측에서는 기념관이 큰 재정수익을 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기념관이 의도적으로 손양원 목사 관련 자료를 왜곡했다고도 주장하며, 유품들을 가지고 다른 곳에 기념관을 만들겠다고 하면서 갈등을 심화되는 상황이었다. 재물과 주님은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했듯이 갈등의 핵심은 결국 돈이었다.

 

기념관을 돌아보며 손양원 목사의 위대한 사랑과 신앙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순교로 인한 남은 사람들의 아픔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주님의 뜻에 따라 기념관과 유가족의 갈등을 해결하고 기념관을 다시 운영하기를 바란다. 안암교회 성도들도 기도해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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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수를 다녀와서 (2) ....정유현 청년
  • 2018-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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